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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혁명, "나는 고발한다.(J'Acc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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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드레퓌스 사건❜과 악의 평범성 (Die Banalität des Bösen)

알프레드 드레퓌스 (1859~1935)

  누명ㆍ날조ㆍ조작 사건의 대명사, '드레퓌스 사건(The Dreyfus Affair)'. 1894년 프랑스의 사법부와 참모 본부는 육군 대위 드레퓌스에게 '간첩'이라는 누명을 씌워 종신형을 선고하고 ‘악마의 섬’으로 유배시켰다. 진범은 참모 본부의 비호를 받은 에스테라지 중령이었다. 그 후 이러한 음모를 고발한 에밀 졸라와 피카르 중령 등의 투쟁에 의하여, 드레퓌스는 누명을 쓴 지 12년 만의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면피용 희생양’일 숱한 ‘드레퓌스’들. 피해자인 그들을 피의자로 전락시킨 허다한 ‘에스테라지’들을 목도할 때면, 그 ‘구조적인 악(惡)’의 면면에 몸서리치게 된다. 아울러 무고한 드레퓌스에게 인면수심의 누명을 씌웠던 에스테라지 중령과 모리배들의 위악은, 한나 아렌트의 익히 알려진 테제인 ‘악의 평범성(Die Banalität des Bösen)’을 새삼 복기하게 한다. (‘Banalität’은 ‘진부함’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지니며, 일본에서는 ‘악의 진부함’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학살자 칼 아돌프 아이히만에 관하여 “… 역사 속 악행은, 광신자나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들의 행동을 보통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에 의해 행해진다.”고 설파하며, ‘평범한 이들’에 의한 살육의 ‘악행’은 바로 ‘무사유(thoughtlessness)’에서 비롯된다고 일갈했다. 일체의 악이 진부한 평범성에 기인할수록 가일층 습속화ㆍ스놉화되기 마련이며, 따라서 ‘악의 편재성(遍在性)’에 대해서도 부정할 수 없게 된다. 사유하지 않는 이들의 범속함은 ‘순전한 악’의 모습을 취한다는 점에서, 약하고도 악하다. 

  그러나 ‘편재(遍在)된 악’을 ‘고발’하여 역사의 심판대에 ‘편재(偏在)’시키는 의인들 또한 어느 시대에든 현현한다. 아이히만을 비판한 한나 아렌트나 '드레퓌스 사건'의 전모를 고발한 에밀 졸라로부터, 영화적 발화를 통해 발고한 조르주 멜리에스나 에롤 모리스 등에 이르기까지. 오늘 여기에 서록할 '사법 피해자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모두 '실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 (사건ㆍ작품 연도의 역순으로 기록하기로 한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린치와 야만들은 내게도 물리적 통각을 동반하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천명하고야 만/말 그들이야말로 항구한 위무와 당위가 되어준다.

  에밀 졸라는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명언한 백서, 『나는 고발한다...! (J'Accuse...!)』를 통해 이렇게 확언했다. “내가 수행하는 이 행위는 진실과 정의의 개화를 앞당기기 위한 하나의 혁명적인 수단”이라고. 그리고 나는 쓴다, 진실과 혁명에 관한 이 불망기(不忘記)를.


 


II. 이대로 죽으면, 그들이 정의가 된다.
  '드레퓌스 사건'보다 더 잔혹한 사례가 아닐까. 이른바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 사건'. 최근 정원섭 목사(74)가 강간·살인범의 누명을 쓴 지 3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가 증언한 각종 린치에 대한 기억과 술회는 김근태 의원의 『남영동』 중 살풍경한 고문실에 서린 '악의 평범성'을 이내 상기시킨다. "그들은 고문하는 와중에 … 딸의 전화를 다정히 받았고, 아들의 진학 문제를 걱정하기도 했다." 바로 이 대목에 모골이 송연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무고한 이를 린치하는 '악'을 행하는 동시에, '다정'과 '일상'을 버젓이 향유하는 그들의 '무지'와 '무사유' 때문이다. 평범한 이들이 행하는 잔악하기 이를 데 없는 악. 이것이야말로 허다한 '드레퓌스 사건'은 물론, 일체의 파시즘과 우민화를 가능케 하는 결정적인 견인차이기도 하지 않은가. 


▲ 강간ㆍ살인범의 누명을 쓰고 무기수로 복역한 지 36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정원섭 목사.

  정원섭 목사가 남긴 단말마의 토로가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는다. 고문과 조작에 의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후, 그는 절망감에 교도소에서 수차 자살 시도를 했다고 한다. 그때 누군가 그에게 ‘필생의 화두’가 될 말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이대로 죽으면, 그들이 정의가 된다. ❞

  그 죽비 같은 조언에 와신상담하여, 이후 오로지 무죄를 밝히고자 고군분투해 온 그의 삶이 영화화된다고 한다. <번지 점프를 하다>를 만들었던 '눈 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았으며, 새해에 크랭크 인해서 연말 개봉을 계획하고 있다고. 스크린으로 만나기 전에 본 사건을 다뤘던 시사 프로그램들의 다시 보기를 링크해 둔다. 특히, ‘억울해서 죽지도 못해요' 편에 방점. 사법 피해자들의 통한과 비참한 실상을 다루고 있다.

MBC <뉴스 후>, 1부. 사법 피해자들의 눈물, 2부. 억울해서 죽지도 못해요. (2008. 1. 5. & 12일자 방송)
SBS <그것이 알고 싶다>, 36년 간의 투쟁-춘천 파출소장 딸 살인사건의 진실 (2008. 12. 20일자 방송)



▲ 英 Financial Times 誌의 헤드 카피.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한국의 재벌 총수들은 휠체어를 탄다."

  또한, 일련의 사안들을 보며 공분하게 되는 또 다른 소회. 대체 법의 잣대란 무엇인가. '핍박받던 유대인' 드레퓌스는 '권력의 축'에 있었던 에스테라지 대신에 누명을 써야 했다. 한편, 정원섭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무전유죄의 희생양이었다"고. 그런가 하면, 전대미문의 초막강 변호인단 덕에 무죄 판결을 받았던 'O. J. 심슨 사건'만 해도 마찬가지였고. 한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진실과 거짓은 널뛰듯 오락가락한다. 이것이 재판인가, 도박인가. 위 사진에서와 같이, 영국의 Financial Times 誌는 "As things get tough, S Korea's bosses get rolling." (곤혹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한국의 재벌 총수들은 휠체어를 탄다.)라는 기사를 통해 '재판 때면 휠체어에 의지하는 재벌들'과 '사법부의 한결같은 솜방망이 처벌'을 풍자하고 있다. 허다한 판결들, 얼마나 참진실에 근접해 있는 것일까.

  그러나, 필연적인 귀결. 드레퓌스는 에밀 졸라의 고발에 의해, 정원섭 목사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 의해, 심슨 사건은 매니저이자 친구인 마이크 길버트의 증언(“실은 심슨이 아내를 살해했다”)에 의해, 마침내 모든 진실이 성역 없이 언명되고야 말았다는 사실. 이것이 당위의 역사가 아니겠는가.

 

 


 III.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한 세기가 지나 일본에서도 ‘제2의 드레퓌스’가 재현된다. <으랏차차 스모부> <쉘 위 댄스> 등으로 알려진 스오 마사유키 감독이 11년 만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는 ‘사법 피해자들에게 바치는 조곡’이다. 2년 간의 법정 투쟁 끝에 무죄 판결을 받은 이의 실화를 모티브로 삼았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에게 모종의 호의를 갖고 있는데, 본 작품도 마사유키가 취재 및 시나리오 작업까지 마쳤다고 한다. 2005년 발생한 사건으로 피해자는 무죄를 주장했지만 누명을 쓴 채로 징역형에 처해졌고, 최고 재판소는 끝내 상고를 기각하여 유죄가 확정되었었다. 이 사건은 2009년 12월 아사히 TV '보도發 다큐멘터리 선언 스페셜'을 통해 <그래도 아빠가 하지 않았어>라는 제목으로 방송된 바 있다. 

  취업차 면접 시험을 치르기 위해 만원 전철에 올랐던 청년 가네코 텟페이(카세 료 扮)가 성추행범으로 오인되어 체포되고, 험난한 법정 공방에 휘말리게 된다는 줄거리. '현장의 목격자'가 되어버린 관객들도 12차에 걸친 공판 과정에 '피고' 가네코 텟페이와 함께 동참하며, 사법 피해자의 울분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 스오 마사유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それでもボクはやってない)>, 2006.

  영화는 사법체제의 고질적ㆍ제도적ㆍ관료적인 병폐를 지적한다. 모종의 큰 비용이 사건의 해결과 직결되고, 결정적 증인을 고의로 돌려보낼 만큼 초동 수사는 허술하며, 피고의 무죄를 변론해야 할 변호사는 합의를 강요하고, 성과주의에 쫓겨 진실의 검증은 뒷전인 변호사ㆍ검사ㆍ판사ㆍ수사관 들은 짜맞추기식 수사와 판결을 남발하고는 한다. 단지 거대한 시스템의 부품처럼 다뤄지던 가네코 텟페이. 마치 <모던 타임즈>에서 거대한 톱니바퀴 속으로 휘말려 부속품처럼 공회전하던 '근대화 시스템의 희생양' 채플린이나, 알란 파커의 <The Wall>에서 통조림이 되어버린 '획일적 교육 시스템의 희생양'인 어린 학생들처럼, 가네코 텟페이 역시 공장에서 기계 돌리듯이, 통조림 제조하듯이, '사법 시스템의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었다. 영화적 이펙트를 자제함으로써, 이 일화가 이전의 실화였음을, 이후의 실제 상황일 수 있음을, 직시할 수 있었다.
     

▲ ❝부디 당신이 심판 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해 주기를.❞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라스트 씬.

  마사유키는 라스트 씬에서조차 영웅담 등의 판타지를 고사한 채, 법정 투쟁의 지난함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하는 동안, 카메라는 법정에 선 가네코 텟페이를 서서히 회전하며 위무한다. (360 Dolly 촬영이 퍽 인상적이었던.) 이윽고 화이트 아웃된 스크린 너머로 그의 독백이 들려온다.  

               ❝ 진실은 신만이 알고 있다고 말한 재판장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틀린 말이다. 

               법정은 진실을 밝히는 곳이 아니라,
               수집한 증거만으로 피고가 유죄인지 무죄인지 임의로 판단하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는 진실을 안다.
               그렇다면, 이 재판에서 진정 심판할 수 있는 이는 나밖에 없다.
               적어도 나는, 재판장을 심판할 수 있다. 당신은 실수를 범했다. 나는 결백하니까. 

               그래도, 그래도, 나는 하지 않았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기를 원하는 그 방법으로 나를 심판하기를. ❞ 

 


IV.  가늘고 푸른 선 (The Thin Blue Line)

에롤 모리스, <가늘고 푸른 선>, 1988.

  드레퓌스 사건의 망령은 미국의 랜덜 아담스라는 남성에게도 옮아간다. 에롤 모리스(Errol Morris)의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은 실재했던 사건에 대하여, 실존 인물들이 등장하여, 향후 사법부가 진범을 가려낼 수 있도록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인 다큐멘터리로 자리매김했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실험이 시도되었던 작품이었다. 전편에 흐르는 필립 그래스(Philip Glass)의 미니멀 음악이 작품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의견들도 있는데, 요즘에는 비디오 아트를 방불케 하는 실험적인 다큐물도 꽤 많아서 결코 낯설지는 않으나, 소리와 침묵이 적재적소에 운용되지는 못했다고 본다. 그런가 하면 감독의 '특정 연출'이 시네마 베리테의 정신에 위배된다는 지적들에 대해서는 그다지 공감할 수 없다. 페이크가 아닌 이상, 팩트를 좀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취한 극영화 방식에 대해서는 좀 더 관대할 필요가 있다.

  타이틀이 시니컬하다. 'The Thin Blue Line'이란, 사건 현장에서 시민들의 접근을 막기 위해 표시하는 경계선을 뜻한다고 한다.  즉, 에롤 모리스는 '가늘고 푸른 경계' 안에서 은밀히 횡행하는 사법 체제의 비리와 무능을 냉소적으로 비틀며 작품 제목으로 차용한 것이다.


▲ 주요 인터뷰이이자, 뒤바뀐 살인범. 데이빗 해리스(左)와 랜덜 아담스(右).

  당초 에롤 모리스는 일명 ‘Dr. Death’라는 어느 악명 높은 법심리학자에 관한 다큐를 기획하여 관련 자료들을 검토하던 중, 살인죄로 복역 중이던 랜덜 아담스에 대한 사건 기록들이 사법 기관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에 대해 심증을 굳히게 된다. 하여, 다큐의 제작 방향이 랜덜 아담스의 무죄를 밝혀 나가는 쪽으로 급선회하게 된 것. 사건의 발단은 1976년 미국 달라스에서 발생한, 한 경찰을 총격 살인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현장에는 두 사내가 있었다. 사건 당시 28세였던 랜덜 아담스(Randall Adams)와 16세 소년이었던 데이빗 해리스(David Harris). 다큐는 이 두 인터뷰이를 주축으로 전개된다. 둘 중 한 사람은 살인범. 검·경과 법원은 랜덜 아담스에게 살인죄로 종신형을 선고했다. 데이빗의 허위 진술과 밀러 부인의 위증, 그리고 "설마 어린 십대 소년이 살인까지 했겠어?"라는 사법부의 틀에 박힌 고정 관념이 애먼 사내를 살인자로 몰고간 것이다. 다큐 <가늘고 푸른 선>을 통해 사건 당시 수사상의 치명적인 허점들이 폭로되었으며, 결국 이 작품은 사건 발생 후 12년 만에 랜덜 아담스의 재심을 열게 하여 무죄 판결을 이끌어 냈다. 한편 데이빗 해리스는 또 다른 유괴 살인 사건을 벌여, 2004년 독극물 주사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한다. 

▲ 에롤 모리스(Errol Morris), <가늘고 푸른 선(The Thin Blue Line)>, 1988. 

  '가늘고 푸른 세계'의 외화면에서, 나는 생각한다. 혐의를 잡아뗀 데이빗과 위증으로 애덤스를 사지로 몰아넣은 밀러 부인의 코멘터리에 대하여. 즉, 사법 체계가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증거주의의 함정'에 관하여. 담합의 카르텔만 성립된다면, 증언과 증거는 협잡ㆍ날조ㆍ조작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괴벨스의 간악한 경구를 소환해 보자. 

❝ 내게 1%의 진실(사실)만 다오. 나머지 99%의 (날조ㆍ조작된) 이야기를 만들어 주마. ❞

  사실과 진실을 치밀하고 치열하게 검증하지 않는다면, 오명의 오인과 오판을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와위의 사각지대에서, 영화가, 다큐가, 어떻게 현실에 개입하고 변화시킬 수 있을까. <가늘고 푸른 선>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써 "인간의 부동성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키리라."고 논파했던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선언이 부단히 진화하기를. 영화와 현실, 허구와 실재, 진실과 거짓 사이, 그 일체의 간극과 부동성으로부터 불멸의 해방을 누리게 되길.

   

 


V.  ❝나는 고발한다. (J'Accuse...!)❞

  이 무수한 드레퓌스들. 사건의 전모와 전권을 파쇄시킨 당대의 형형한 '고발'들을 지금 여기로 초혼해 본다. 에밀 졸라는 1898년 1월 13일여명(L'aurore)》 誌에 드레퓌스의 결백 및 진범들 에스테라지 중령ㆍ참모 본부의 과실을 은폐한 장군들ㆍ위증한 필체 감정가ㆍ부실 재판한 군사 재판부 등 에 대한 고발의 격문(나는 고발한다...!)을 발표했다. 사법부는 재심과 사과는 커녕, 군사 재판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에밀 졸라에게 징역형을 선고했고. (요즘 가해자들이 적반하장으로 악용하는 명예훼손죄의 모순과 용호상박인.)

  그러나 그의 위대한 고발은 헛되지 않아 대법원은 1906년 드레퓌스에게 비로소 무죄를 선고했다. 에밀 졸라 자신의 말 대로 그가 사활을 걸고 수행한 고발은 "진실과 정의의 개화를 앞당긴 혁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 등 여러 영화인들에 의해 드레퓌스 사건을 공론화시키게 한 도화선이 되었다. (십여 년 후 졸라의 기고문 제목과 같은, 아벨 강스(Abel Gance)의 동명 타이틀 영화도 공개되었는데, 그러나 이 작품은 드레퓌스 사건과는 무관한 반전 영화다.)


 ▲ 조르주 멜리에스(Georges Méliès),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 1899. 

  최초의 검열 영화, 멜리에스의 <드레퓌스 사건(L'affaire Dreyfus)>. 그가 이 영화를 “재구성된 뉴스릴”이라고 소개했듯이, 그는 '카메라를 만년필로'(Caméra-stylo) 삼아 이 사건의 부당함을 고발했다. 에밀 졸라의 고발 이후 여론이 들끓자, 사법부와 검열 당국은 이듬해에 발표된 멜리에스의 이 영화가 사회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며,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모든 영화의 상영을 전면 금지시켰다. 당시 멜리에스가 겪은 이러한 일화들은 후일 마틴 스콜세지의 <휴고(Hugo)>를 통해서도 인용되었다. 

  그리고, 재심. 앞서 언급한 2008. 1. 12일자 <뉴스 후>에 따르면, 사법부의 파행적인 수사와 재판으로 인한 사법 피해 사례가 매년 3,000 건에 이른다고 한다. 정원섭 목사가 천신만고 끝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의 공조로 재심 및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 기관의 조력 대상은 주로 시국 사건의 피해자에게 국한되어 왔다는 아쉬움이 있다. 정원섭 목사의 금번 무죄 판결을 계기로 모든 사법 피해자들에게 재심의 문이 개방되기를. "사법 피해를 당한 일반 시민들의 명예 회복, 그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 이뤄져야 비로소 참민주화에 진입했다고 본다. (그릇된 재판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재심 요건을 확대해야 한다."라는 임영화 변호사의 말에 동감한다.  



▲ 드레퓌스 사건의 음모를 알린 에밀 졸라의 기고문 <나는 고발한다>가 실린, 1898. 1. 13일자 《여명(L'aurore)》 誌.


  이 모든 드레퓌스들의 혈루를 볼 때면, 그의 선언을 진언처럼 되뇌게 되는 것이다.

          ❝ 크나 큰 고통을 지나, 이제 행복할 권리가 있는 인류의 이름으로 진실의 빛을 밝히는 것.
         그것만이 내 단 하나의 열망입니다. 타오르는 나의 항변은 내 영혼의 외침일 뿐.
         나를 중죄 재판소에 고발한다 해도, 나를 만천하에 심판한다 해도,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

          나의 의무는 발언하는 것입니다.
         나는 (어두운)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진실은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혁명을, 에밀 졸라의 강림을, 갈망한다.